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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게이트’ 그림자···오너리스크에 추락하는 네이처리퍼블릭

[유통 흑역사] ‘정운호 게이트’ 그림자···오너리스크에 추락하는 네이처리퍼블릭

등록 2021.07.12 09:05

김다이

  기자

미다스 손에서 도박꾼·뇌물공여자로 전락전방위 구명 로비 정·관·재계 핵폭탄 ‘줄구속’오너리스크 직격탄 매출 급감 눈덩이 손실

 ‘정운호 게이트’ 그림자···오너리스크에 추락하는 네이처리퍼블릭 기사의 사진

화장품 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는 ‘도박꾼’에 ‘뇌물 공여자’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어 있다. 2016년 법조와 정·관계, 재계까지 연루된 ‘정운호 게이트’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시한폭탄과 같았던 정운호 게이트는 전관예우의 폐해와 온갖 비리로 얽힌 주요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태로 번졌다.

정 대표는 2015년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기소되면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브로커를 동원해 ‘전방위 구명 로비’를 펼친 것이 드러나면서 ‘정운호 게이트’를 열었다. 정 대표는 원정도박 사건과 민사 소송 등에서 유리한 결과를 받기 위해 검사장과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에 막대한 수임료를 지급했고, 이 수임료는 향후 브로커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흘러갔다.

◇더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일군 ‘로드숍 신화’의 몰락= 정운호 대표는 1세대 로드숍 신화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는 1992년 화장품 대리점 사업을 시작으로 화장품 업계에 발을 들였다. 2003년 더페이스샵을 론칭해 국내 화장품 업계에 ‘로드숍 열풍’을 일으켰다. 더페이스샵은 설립 2년 만에 ‘미샤’를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서며 승승장구했다. 정 회장은 창업 2년 만인 2005년 더페이스샵 지분 70%를 사모펀드 어피니티에 매각했고, 2009년 LG생활건강에 남은 지분마저 넘기며 1700억원 수준의 차익을 남겼다.

이후 정 대표는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을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며 성공스토리를 이어갔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수딩젤’, ‘아쿠아 수분크림’ 등 히트상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성공 신화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15년 정 대표가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날개가 꺾이기 시작했다. 오너 개인의 일탈이 잘나가던 회사의 앞날을 막는 암초가 된 셈이다.

정 대표는 2012년부터 2014년 동남아 일대 카지노에서 수백억원대의 고액 도박 혐의로 수사망에 올랐지만,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정 대표는 원정도박으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횡령해 도박 자금을 정산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그러나 홍 변호사가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힘을 쓴 결과 정 대표는 ‘횡령’을 쏙 뺀 ‘도박’ 혐의로만 수사를 받을 수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도 전관 홍 변호사의 영향력이 컸다. 2014년 7월 경찰은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의견을 냈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미 무혐의 처분이 났음에도 이를 몰랐던 정 씨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마카오에서 카지노에 출입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증거물을 검찰에 제출했다. 새로운 증거를 발견한 검찰은 다시 사건을 재개했으나, 수사 재개 4일 만에 다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은 달랐다. 재판부는 정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예상과 달리 징역살이를 하게 된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보석을 받기 위해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를 선임했다. 정 대표는 보석을 조건으로 최 변호사에게 수임료 50억원을 지급했는데, 보석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최 변호사는 성공보수 명목으로 받았던 30억원을 정 대표에게 돌려줬다.

정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보석에 실패했으니 나머지 20억원의 절반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최 변호사는 20억원은 착수금이라며 거절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이 일로 화가 난 정 대표는 최 변호사의 손목을 비틀고 욕설을 퍼붓는 등 두 사람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감금,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정운호 게이트’ 정치 스캔들로 나비효과 일파만파= 수임료 갈등으로 인한 폭행 사건은 향후 전방위 로비 사건이 드러나는 불씨가 됐다. 폭행 사건 전말에 20억원의 착수금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전관 앞세운 로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변호사 한 명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이 일로 화살은 최 변호사에게 향했다. 최 변호사는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 형사사건 수임료로 50억원을 받은 혐의까지 드러나 총 100억원의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 6월 형을 받았다.

당시 궁지에 몰린 최 변호사는 정 대표가 자필로 작성해 줬다는 ‘구명 로비스트 명단’을 언론에 흘렸다. 리스트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검사장 출신 유명 변호사와 현직 부장 판사가 포함돼있었다. 여기에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정운호 구명 로비’ 혐의로 징역 2년을 받게 되면서 사건은 ‘법조 게이트’로 확장됐다.

‘정운호 게이트’는 기업 로비 의혹에서 시작해 청와대와 정·관계로 확산했다. 결과적으로 롯데와 정부까지 얽히며 줄줄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정 대표는 법조계 고위직 인사와 국회의원, 경찰 간부, 청와대 인사 등과 친분이 있어 정 대표의 해결사 역할을 해오던 브로커 이 모씨와 손을 잡았다. 정 대표는 이 씨를 9억원에 영입해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지하철 입점을 로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다른 방산 브로커 한 모씨를 통해서는 군 PX 납품 비리 의혹을 받게 됐다. 정 대표는 한 모씨를 통해 롯데면세점 입점을 위해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에게 로비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신영자 이사장은 이 사건으로 횡령 및 배임 혐의까지 밝혀지면서 구속기소 됐다.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면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정운호 게이트는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까지 드러나게 되면서 헌정사상 초유의 정치적 스캔들로 연결됐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의 화장품회사 대표의 수임료 갈등으로 촉발된 사건은 법조 기업 군납 로비 의혹에 이어 청와대 고위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이트로 부푼 셈이다.

◇정운호 대표, 출소 후 슬그머니 경영 복귀= 정운호 대표 구속은 네이처리퍼블릭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너리스크로 실적이 급감한 것은 물론, 사드와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상황은 날로 악화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정 대표가 자리를 비운 것이 회사에 큰 리스크로 작용한 것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14년 말 기업공개(IPO)도 시도했으나, 정 대표의 구속과 맞물리면서 상장이 불발되기도 했다.

실제 2016년 198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실적을 냈던 네이처리퍼블릭의 매출은 2020년 1384억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 역시 적자로 돌아섰다. 2016년 11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후 2017년 238억원, 2018년 190억원, 2019년 128억원, 2020년에는 2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손실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3월 수감생활을 마친 정운호 대표는 슬그머니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회사의 위상을 추락시킨 장본인이 다시 수장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다. 정 대표는 복귀하자마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무너진 해외사업 정리를 위해 칼을 빼 들었다. 2012년 미국 하와이와 일본을 시작으로 홍콩, 중국, 미국 등에 세웠던 해외법인도 오너리스크 촉발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자본잠식 상태인 홍콩, 중국, 미국 등 4개 법인을 철수하고 중국 법인은 1곳으로 통합하는 등 고강도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정 대표는 히트상품 발굴을 위해 신제품 출시에도 열을 올렸다. 하지만 코로나19까지 덮친 상황에서 반등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전년 128억원에서 204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오너의 복귀가 네이처리퍼블릭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뉴스웨이 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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