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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흑역사]맨 손으로 '웅진' 재계 30위 신화, 윤석금 회장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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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6조 찍고 1조로 추락 알짜 계열사 다 팔고 교육사업만 남아
국내 렌탈 시장 최강 ‘코웨이’ 황금알 복덩이 키워 넷마블에 넘겨
무리한 사업확장 재정난 부메랑 계열사 매각 후 재인수 과정서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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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학습지 기업과 방문판매업체로 재계 30위권 그룹을 일군 ‘방판업계 신화’로 불린다. 그룹 모태인 교육사업을 시작으로 코웨이를 통해 국내 최초 렌탈사업을 선보였고 나아가 에너지·저축은행 사업까지 손을 뻗었다.

이런 윤 회장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독이 되면서 2012년 법정관리를 겪으며 그룹 해체 목전까지 갔다. 윤 회장은 코웨이를 포함한 핵심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하며 간신히 그룹을 살려냈다. 그러나 그는 자식 같던 코웨이에 다시 욕심을 냈고 2019년 이를 재인수했다가 1년만에 재매각하며 다시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웅진그룹은 코웨이 재인수·재매각의 여진으로 여전히 몸살을 앓는 중이다. 남은 계열사들마저 줄줄이 매각됐거나 매각 수순을 밟는 등 10여년 전 ‘흑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현재 웅진에게 남은 것은 웅진의 모태가 된 ‘교육사업’ 뿐이다.

◇재계 30위까지 올랐던 웅진그룹의 몰락= 윤 회장은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윤 회장은 당시 전 세계 판매왕에 오르는 등 뛰어난 영업 능력을 입증해나갔다. 그는 1980년 교재와 어린이용 서적 출판 회사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을 세웠고, 1987년 웅진식품 인수, 1988년 코리아나화장품 및 1989년 한국코웨이 설립 후 음료와 화장품, 정수기 등을 방문판매 형태로 선보이며 사업을 확장했다. 국내 최초로 렌탈사업을 시작한 코웨이는 웅진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는 발판이 됐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모태 사업과 무관한 사업확장은 웅진그룹에 독이 됐다. 웅진그룹은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하며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2008년에는 새한(웅진케미칼)을 인수해 화학소재 사업에도 손을 댔다. 2010년에는 서울저축은행을 통해 금융업에도 발을 들였다. 한때 웅진그룹은 매출 6조원으로 재계 순위 30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새로 진출한 사업들이 기존 웅진그룹의 사업과는 성격이 너무나 달랐고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겹치며 재무상태가 크게 악화했다.

특히 웅진그룹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극동건설 인수 후 경기 침제로 건설업계 불황이 지속되면서 재정난이 가중됐고,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에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추가 투입했지만 결국 회사를 살리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결국 웅진그룹의 무리한 자금수혈은 그룹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악수가 된 것이다.

2010년 매입한 서울저축은행도 건설업계 불황에 따른 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사세가 기울었다. 윤 회장은 사재까지 쏟아부으며 서울저축은행에 총 2800억원을 수혈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웅진에너지를 통해 시도한 태양광 사업도 웅진에너지가 적자지속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는 요인이 됐다.

◇황금알로 키운 ‘코웨이’ 눈물 머금고 매각…2번째 이별= 웅진그룹은 2013년부터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그룹 내 알짜 계열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웅진식품, 웅진케미칼에 이어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코웨이마저 매각했다.

코웨이는 웅진그룹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웅진그룹은 1989년 한국코웨이 설립 후 정수기와 화장품 등을 방문판매 형태로 선보이며 사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 윤 회장은 팔리지 않는 정수기를 창고에 쌓아두느니 빌려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정수기 렌탈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렌탈 사업의 시작이었다.

당시 웅진코웨이는 1대에 100만원을 호가하던 정수기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면서 정수기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자리에 올랐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렌탈사업을 시작한지 1년 만에 10만대의 정수기를 팔았다. 정수기는 위기에 빠진 웅진그룹이 1년 만에 흑자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극동건설의 부도로 위기를 맞은 웅진그룹은 2013년 웅진코웨이를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에 1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자식 같이 키운 코웨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윤 회장은 매각 6년 만인 2019년 3월 시장 매물로 나온 코웨이를 재인수했다. 당시 윤 회장은 “한 달에 열 번은 상상했다”며 코웨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웅진그룹은 당시 코웨이를 약 2조원에 인수했는데, 이 중 1조6000억원을 외부에서 무리하게 수혈해오면서 그룹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웅진에너지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지주사인 웅진의 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떨어지는 등 그룹 전체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윤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코웨이를 인수한 지 석 달 만에 재매각했다. 코웨이를 되찾으려던 노력에도 ‘웅진코웨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교육사업’…웅진북센 매각후 재인수=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재매각하고 재인수하면서 과도한 지출로 인해 또다른 알짜 계열사를 매각했다가 재인수하는 실수를 반복했다. 국내 도서물류 1위인 웅진북센의 이야기다.

2019년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넷마블에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지난해 5월 차입부채를 메우기 위해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에 국내 도서물류 1위인 알짜 계열사 웅진북센을 493억원에 팔았다.

웅진북센 매각 당시 웅진그룹은 매각을 3년 이내 되돌릴 수 있는 조건(콜옵션)을 걸었는데, 윤 회장은 웅진씽크빅의 대전 물류센터를 매각한 자금으로 1년 만에 539억원을 주고 북센을 되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웅진그룹은 5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본 것이다.

웅진그룹은 그룹의 존폐위기가 달린 상황에서 지난해 웅진플레이도시, 웅진북센을 매각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렉스필드컨트리클럽(렉스필드CC)까지 매물로 내놨다. 렉스필드CC는 1990년 문을 연 골프장으로 윤석금 회장이 매일 오전 골프장에 찾을 정도로 아끼는 계열사로 알려졌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팔지 않았던 렉스필드CC를 매각한다는 것은 웅진그룹의 현 상황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웅진그룹의 계열사는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렉스필드CC, 웅진북센, 웅진플레이도시, 웅진투투럽, 웅진에버스카이 등으로 이 중 렉스필드CC, 웅진플레이도시의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웅진그룹은 그간 위기를 겪으면서 계열사를 하나, 둘 매각했다. 이제 웅진그룹은 ‘그룹’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그룹의 모태가 됐던 ‘웅진씽크빅’ 중심의 단일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웅진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향후 웅진그룹은 그룹 모태인 웅진씽크빅을 통한 교육사업을 확대하고 미래 먹거리 찾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웅진씽크빅은 지난해 사내 벤처로 출범한 키즈플랫폼 ‘놀이의 발견’을 분사하고 윤 회장의 차남 윤새봄 전무를 대표이사로 세웠다.

웅진그룹이 웅진씽크빅을 중심으로 한 교육기업으로 재편되면서 승계의 무게추가 윤새봄 전무에게 쏠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형덕 전무는 방판 사업을 맡고 있는데 코웨이 재매각 후 그룹 내 방판사업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윤새봄 전무는 놀이의발견 분사 시기였던 지난 5월 주식 274만9065주를 장내 매수하면서 지분율이 14.14%에서 16.41%로 높아지면서 형 윤형덕 대표의 지분 12.97%를 넘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김다이 기자 da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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