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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너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데스크칼럼]오너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

등록 2021.05.04 21:40

수정 2021.05.05 18:36

이지영

  기자

“가족은 건드리지마. 선은 넘지마”
영화를 보다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사다. 가족관계, 학교나 직장생활, 비즈니스. 우리는 사람들과 얽힌 관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이 수 많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특히 어떤 집단에 속해 살아가든지 중요한 것은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각종 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에서도 ‘있는 자’로 나오는 이선균과 ‘없는 자’역 송강호는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다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이는 사람 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해당된다. 기업들도 사업을 하면서 경쟁사나 동종업계 간 지켜야 할 상도의가 존재한다. 특히 수백명~수십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 오너나 CEO들의 행동은 중요하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회사 주가를 움직이고,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며 소비자 지갑을 열리게 한다. 이들이야말로 지켜야 할 ‘선’이 명확하고 그 무게는 상당하다.

오너가 ‘선’을 지키지 못해 기업이 낭패를 본 사례를 들어보자. 가장 최근 사례다. 일명 ‘불가리스 코로나 마케팅’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남양유업 이야기다. 오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17년 만에 회장직도 내려놨다. 이 자리에서 홍 회장은 지난 10년 간 남양유업이 일으킨 불란을 하나씩 꼬집으며 사과했다. 2013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갑질사건’, 마약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경쟁사 비방 온라인 댓글 사건 등이다. 그는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면서 경영권 승계 포기도 약속했다.

홍 회장 일가족의 ‘도 넘은 행동’은 유명하다. 그간 회사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을 지휘한 홍 회장을 중심으로 장남 홍진석 상무는 현재 보직 해임상태다. 회삿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이 덜미를 잡혀서다. 홍 회장의 외조카인 황하나 씨는 수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됐고, 현재는 절도 혐의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이 처음부터 온갖 구설을 몰고 다녔던 기업은 아니다. 식품 업계에선 역사가 깊다. 고(故)홍두영 명예회장은 1964년 회사를 창업해 분유업계 1위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높은 품질은 인정받아 ‘품질의 대명사’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소비자 신뢰도 상당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지휘봉을 물려받고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면서 회사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실적은 서서히 추락했고 회사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는 신뢰했던 남양유업을 ‘악덕 기업’으로 인식했고 외면했다.

또 다른 기업을 살펴보자. 오너가 개인 SNS 활동을 통해 직접 제품 마케팅에 나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글과 사진을 게재한다. 주로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는 사진을 여러장 올리며 간단 코멘트를 적는다.

가끔은 자신이 이끄는 이마트 제품 사진을 올려 직접 소개하기도 한다. ‘재벌’의 생활이 궁금한 팔로워들은 정 부회장의 SNS활동에 열광한다. 이제 그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의 ‘재벌’ 중에서는 유일하다. 정 부회장이 가는 곳마다 ‘팬’들이 몰려든다. 그는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친필 싸인도 서스름 없이 해준다.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더 없이 훌륭한 오너의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정 부회장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야구단을 인수한 후 상대 팀에게 쏟아내는 폭탄 발언이 수위를 넘어섰다.

그는 지난 한 달 간 수 차례 음성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경쟁사 ‘롯데’를 콕 찍어 자극적인 발언으로 도발했다.

신세계그룹과 유통업계에서 경쟁 구도에 있는 롯데그룹 총수 신동빈 회장에게 ‘동빈이형’이라는 호칭을 쓰며 비아냥댔다. “동빈이형은 야구에 관심 없다가 내가 도발하니까 이제서야 자이언츠에 관심을 보이는거다. 앞으로도 롯데 더 불쾌하게 만들 것. 걔네는 어쩔 수 없이 우릴 쫓아와야 할 것이다”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야구 팬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롯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롯데자이언츠 외에 라이벌로 생각하는 팀을 키움 히어로즈로 꼽으며 “과거 내가 인수하려고 했을 때 걔네들이 날 X무시했다. 키움 XXX들 다 발라버리고 싶다. 이번에 우리가 이겼을 때 이 개 XXX들 샘통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펀치를 날리며 법정 싸움을 멈추지 않는 치킨집 BBQ와 bhc 얘기를 해보겠다.

두 치킨집 싸움은 이미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이 둘은 원래 한 가족이었다. 2013년 윤홍근 회장이 해외 진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bhc를 미국계 사모펀드 더로하틴그룹에 매각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매각 이후 양측은 수십건의 소송을 주고받는 ‘앙숙 관계’가 됐다. BBQ에서 bhc의 매각을 주도했던 박현종 회장(당시 부사장)이 매각 후 bhc의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감정의 골이 생겼다. BBQ 입장에서는 매각 과정에 깊숙이 관여할 정도로 BBQ와 bhc의 내부 정보를 잘 알고 있는 박 회장이 경쟁사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 불편했다. 7년간 이 두 회사는 20여건의 소송을 주고받았다. 소송들에 걸려있는 금액만 5000억원에 달한다.

앙숙관계를 이어오면서 두 치킨집 회장님들은 ‘선’을 지키지 못하고 물어 뜯기를 반복하고 있다. 회사를 비방하는 경쟁사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의 비서진을 대동해 상대방 홍보 담당자를 미행, 협박했던 해프닝이 있다. 범법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상대방 회사 내부를 수시로 해킹하며 주요 정보를 빼내고, 부정 행위를 잡아내 미디어에 제보한 사례도 여러 번 있다.

최근엔 BHC가 윤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유는 윤 회장이 자신의 개인회사에 BBQ가 자금을 수혈하도록 해 손해를 끼쳤다는 것. 당사자도 아닌 제 3자가 전혀 관계없는 경쟁사 집안 사정을 폭로하며 그 회사가 피해를 봤다고 오너를 고발한 사례다. 기가 막힐 일이다.

오너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그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고용된 수 많은 직원은 회사의 미래에 자신의 젊음을 걸고 열정을 쏟아낸다. 소비자는 오너와 직원들이 만들어낸 기업 이미지를 보고 신뢰성을 판단한다. 오너들의 한 순간 실수로 넘어버린 ‘선’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오는지 상상해보라.

뉴스웨이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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